성남시 수정도서관

수정도서관<책속한구절>TV속 화제의 위인들2:정조대왕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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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꿈 / 유봉학 / 신구문화사

 

p. 16~17

 정조의 죽음과 관련하여 항간에는 정조독살설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세간의 막역한 추측이 <영원한제국>이라는 소설의 상업적 성공 이후 이제 일반에게는 통설이 된 셈이다. 소설적 허구가 역사적 사실과 일치 하지도 않으며 또 일치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간과하는 가운데, 정조 독살설은 역사적 사실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p. 32

 정조가 교속과 술교를 강조하면서 호대의 인사원칙을 무시하고 즉위이후 자신이 내걸었던 탕평정치의 원칙을 스스로 부인한 것은 상당한 정국의 혼란을 야기 하였다. 이즈음 정조는 측근 세력마저도 냉담해진 신각한 정치적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그간의 정치운영의 원칙을 뒤엎고 4년후 갑자년을 겨냥하여 외척을 중용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를 시도하게 된다.


 p. 66

 정조의 마음에 따라 어쩌면 정조의 분신 인 듯 지금껏 사도세자 묘소 곁을 지키고 있는 문인석은 정조의 초상화가 소실된 지금, 정조의 모습을 연상시켜 주는 가장 의미있는 자료로 남아 있다.


 p. 95

 정조는 양대 정치세력 일각의 사상적 불순정성을 동일시하여, 양쪽을 모두 견책하고 반성을 하도록 조치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잘못된 습속을 바로 잡는다는 교속의 원칙을 확대하여 제시하고, 양 정파의 핵심인물들이 속된 습속에 빠졌음을 공개적으로 방선하도록 조치하였던 것 이다.


 p. 109

 신료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왕권강화 의지와 군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사림정치의 이상론은 정조의 정치적 실패뿐 아니라 탕평정치와 사림정치 모두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하겠다. 외척세도로 왕권이 추락하고 정파간의 견제구조가 무너졌으며, 탕평정치의 원리까지도 일거에 무너졌던 조선후기 정치사의 대격변은 정조시대 군신의 정치적갈등 속에서 배태되어 나왔던 것이다.


p. 127

 일부 경화사족들은 조선의 실정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조선의 문화자존의식에도 수정을 가하고자 하였다.


p. 160

 경화사족의 외연 확대, 그들 간의 활발한 교류, 그리고 위항인들의 대두와 양반계층의 생산활동 종사 등은 조선사회의 전통적 신분관과 명분론 약화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