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수정도서관

수정도서관<책속한구절>TV속 화제의 위인들1:사도세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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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세자의 고백 / 이덕일 / 푸른역사

 

 

p. 25

 눈물 많고 정 많은 영조는 필시 영빈이씨와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였을 것이다. 영조는 감정이 매우 풍부했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 임금이 된 후에도 늘상 눈물을 달고 다녔던 영조는, 실로 눈물의 임금이라 할 만했다. 즉위한 후 영조가 흘린 눈물은 대부분 정치 때문이었다.


  p. 29~30

 세자 책봉식을 바라보는 영조는 감회가 새로웠다. 자신은 무수한 시련을 겪은 후에야 왕세자로 책봉될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평생씻지 못할 정치적 상처도 입었다. 그리고 이 기억은 가슴속 깊은 곳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탕평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역적으로 몰았던 당파까지 끌어 안으며 상처를 보듬어온 영조는 훗날 아들 선이 즉위할 그날도 오늘 만큼 순조롭고 경사로운 출발이 될 것임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p. 81

 과거는 이미 흘러가버린 물결이었다. 현세의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 힘이 미치는 곳은 현재이지 과거는 아니다. 현세의 권력으로 과거를 뒤바꿀수 있다고 믿었다면 이는 인간의 권력 자체를 과대평가한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는 그 자체로서 살아 숨쉬는 것이다.


 p. 120

 조선 후기 임근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무왕이 아니라 문왕이었고 영조도 세자에게 어린시절부터 문왕을 닮을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세자는 문을 등한시 하지 않았지만 무가 적성에 더 맞았다. 좋게 말하면 문무를 겸전하려 한 것이다.


 p. 150

 그러나 영조가 주장한 탕평은 사실상 노론의 자리에서 소론을 포용하는 부분적 탕평이었다. 이런 부분적 탕평을 추진하는 데도 영조는 지대한 인내가 필요했다.


p. 165

 김상로와 노론에게 세자의 즉위는 두려운 일이었다. 세자가 즉위하면 오늘 소론을 향하고 있는 정치보복의 칼끝을 자신들에게 향할수도 있으며, 죽은 소론영수들에게 역률을 추시했던 것처럼 자신들도 똑같은 보복을 당할우려가 있었다.


p. 225

 세자의 위기감은 점점커졌다. 세자는 약방의 입진을 거절하는 것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는지 식사도 거부했다.

단식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p. 254

 세자는 분명 위기를 느끼고 있었고, 자신을 압박하는 노론을 제거할 결심을 했을것이다. 그러나 부왕 영조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군사정변을 일으켜 영조와 노론 모두를 제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