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수정도서관

수정도서관 '책속 한 구절' <대한민국 다시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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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다시 걷고 싶은 길 / 한국여행작가협회 / 예담

31p. [제주 올레길/이겸]
남읍리에는 올레의 옛 모습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올레는 관광 코스로 짜인 걷기 코스와는 전혀 다르다. 제주도의 올레는 집과 마을을 연결해 주는 작은 길로, 공공의 길이라기보다는 주로 가족이 쓰는 길이다. 대문을 두지 않는 제주도의 전통을 반영해 올레는 집과 집으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다.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거센 바람을 누그러뜨려 집 안으로 들이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남읍리와 하가리에는 이런 특징을 오롯이 반영한 올레가 곳곳에 남아 있다. 검은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 두 사람이 간신히 스쳐 지나갈 정도로 좁고도 소담스러운 길. 올레에서 만나는 행운은 중산간 여정의 작은 기쁨이요, 소득이다.

63p. [북한산 둘레길/채지형]
소나무숲길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빼곡한 길로, 경사가 완만해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다. 이곳에 들어서면 청아한 새소리와 함께 짙은 솔향이 감지된다, ‘바로 이거야!’라는 감탄이 절로 흘러나온다. 비가 옅게 내린 후에는 초록이 더 싱싱해지고 향도 더 진하게 퍼진다. 소나무가 뿜어내는 기운들이 머릿속을 맑게 해 주는 것 같다. 어지러운 마음도 가지런해지는 듯하다. 우이계곡을 따라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가 지친 가슴을 다독여 준다.

137p. [서오릉 길/이시목]
500년 조선의 시간이 잠들어 있는 왕릉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명상의 공간’이다. 수백 년 시간의 더께가 낙엽처럼 내려앉아 만추의 서정이 더해져 생각을 정리하는 데 더 없이 좋다. 이왕이면 낙엽밟기 좋은 곳을 골라 가자. 고양시 용두동에 있는 서오릉은 서울에서 가까운 데다가, 소나무숲과 낙엽활엽수림이 적당하게 조화를 이룬 산책로를 끼고 있어 생을 반추하며 걷기에 좋다.

165p. [설악산 흘림 트레킹/우정열]
여심폭포에서 등선대까지는 경사가 심한 오르막 구간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등선대에 오르면 남설악의 서북 능선 줄기가 그림처럼 이어진다. 등선대 전망대에 서면 만물상과 점봉산이 보이고, 반대편으로는 칠형제봉과 서북 능선, 그 너머에는 대청봉, 귀대기청봉, 한계령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그야말로 숨이 꼴딱 넘어가는 힘겨움 뒤에 짜릿하게 따라오는 쾌감이다.

186p. [실레이야기길/임인학]
산길 중간 중간에는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산국농장 금병도원길’, ‘춘호 처가 맨발로 더덕캐던 비탈길’, ‘응칠이가 송이 따먹던 송림길’, ‘응오가 자기 논의 벼 훔치던 수아리길’ (중간생략) ‘김유정이 코다리찌개 먹던 주막길’ 등 김유정의 작품 내용을 본뜬 이름을 붙여 놓았다. 김유정으로 시작해서 김유정으로 끝나는 실레이야기길이다.

393p. [해인사 소리길/이주영]
해인사 소리길은 우주 만물이 서로 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길, 나와 가족과 사회와 민족이 화합하는 소통의 길이자 깨달음의 길, 귀 기울이면 물소리, 바람소리, 세월가는 소리가 들리는 길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웅장한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 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가 수백 년 송림에서 뿜어 나오는 달콤한 바람과 함께 거세졌다 잦아들기를 반복한다.